[비즈한국] 대중가요는 종종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연가(戀歌), 즉 사랑 노래가 너무 많아서다. 대중가요를 ‘사랑 타령’이라는 말로 낮춰 말하기도 했다. 대중가요에 사랑 노래가 많은 것은 일반 사람들이 관심 있을 만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음악적 훈련을 많이 받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사랑이다. 아이돌 음악 중심의 K팝에도 같은 평가가 내려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K팝에 사랑 타령 일색의 노래가 사라졌다. 사랑 타령 일색인 노래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사랑이 K팝의 주요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K팝이라고 하면 사랑 노래였던 것과는 다르다. 단지 사랑 타령만 한다는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사랑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일까?
일단 드러난 현상은 걸그룹의 약진이다. 2010년대 이후 걸그룹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성 팬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과거 걸그룹 팬은 남성, 특히 아저씨 팬들이 상당했다. 팬덤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들은 한계가 있었다. 섹시하거나 귀엽거나 두 가지의 프레임에 한정되기 쉬웠고, 여성의 사회적 삶에는 관심이 적었다. 팬덤 응집성과 지속성, 구매력 성장도 덜했다.
여성 팬덤이 이끌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 걸그룹도 남성보다 여성이 좋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섹시하거나 귀여운 스타일보다는 당당하고 주체적인 분위기나 또래 감성을 내세운 걸그룹들이 인기를 끌었다. 블랙핑크도 초창기는 걸크러시한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부각했고, 베이비몬스터는 여전히 그 계보를 잇고 있다. 또래 감성을 적극 부각한 사례는 뉴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당하고 발랄한 스타일은 아이브가 대표적이다. (여자)아이들, 르세라핌, 에스파, 잇지(ITZY), 캣츠아이 등 4세대 걸그룹 아이돌은 여기에 속한다.
K팝은 대체로 청소년을 대변하기 때문에 사랑 노래에만 함몰될 수 없다. 또 Z세대는 사랑에 환상이 크지 않다. 보이그룹도 더 이상 사랑의 프레임 안에만 있지 않다. 이성애보다는 성장기에 겪는 갈등과 방황, 꿈과 희망을 노래한다. K팝은 어려운 상황을 견디거나 극복하는 데 힘을 주는 음악 스타일과 가사로 전 세계 청년세대에게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는 어려움을 K팝 덕분에 견딜 수 있어서다.
여성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변화한 것도 K팝의 확장과 성장에 이바지했다. 특히 여성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지역에서 K팝 노래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곳의 팬들로서는 미래의 자신을 K팝에서 미리 접하는 셈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본 팬이 올린 SNS 글이 화제가 되었다. K팝에서 사랑 노래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인데, 원인 진단이 의아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이 정말로 저출산이라는 게 이해되는데 최근 K팝에서 연애 노래가 진짜 줄었다. 특히 여자들은 계속해서 ‘나는 진짜 특별해’를 노래하거나 ‘우린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라는 식의 곡밖에 없어. 한때 병들어 미쳐서 사람을 죽일 정도의 기세였던 연애 노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저출산으로 외동이 늘면서 자기 중심성이 강해졌다는 견해다. 여기에 지금 삶에 만족하기 어려워진 상황을 노래와 연관 지은 것이다. 하지만 저출산과 K팝의 사랑 노래 감소는 관련이 없다. K팝은 자기중심성이 아니라 자아실현에 관심이 많은 청춘의 마음을 대변한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만 담긴 것도 아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깊이 고민하고 잘 꾸려가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을 K팝은 반영한다.
특히 걸그룹이 보이그룹을 넘어 크게 성장했고, 걸그룹은 또래의 정서와 감성을 담아내 여성 팬덤을 확장하고 공고히 하면서 사랑 타령 일색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맥락은 K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중요한 모멘텀(Momentum)이 된다. K팝이 세계 청춘들의 성장과 행복을 위한 동행자로 함께하려면 사랑 노래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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