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과거 공포물은 납량 특집물이었다. ‘납량’이란 말은 들일 납(納), 서늘 량(凉)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서늘함을 들이다’라는 뜻이다. 더운 여름에 피서의 방편으로 공포영화나 특집 드라마를 방영했다. 공포물을 보면 일시적으로 소름이 돋으면서 더위가 가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방 장치가 보편화되면서도 공포물이 주는 서늘함은 효용성이 떨어졌다. 90년대 들어서서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확대되고 한국 영화 산업이 팽창하면서 여름 극장가는 대형 블록버스터가 자리를 차지했다. 액션 오락물이 중심을 이루다보니 공포물은 밀려났고 관객들이 선호하는 장르도 아니었다. 결국 성수기인 여름에서 비수기에 해당하는 가을로 향했고, 거기서도 밀려 봄에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올봄에 개봉한 공포영화 ‘살목지’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살목지’는 영화 ‘왕사남’과 같은 기업이 제공, 배급했다. 그래서인지 홍보 마케팅 방식이 유사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참여를 통해 영화 관람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영화 ‘왕사남’은 세조의 능인 광릉 홈페이지에 악플이 달린다는 내용과 단종 유배지 청령포에 사람들이 많이 와 혼잡하다는 내용이 SNS에 알려지면서 영화 관람 동기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도대체 어떠하기에 그렇게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화 ‘살목지’는 야밤에 많은 차량이 충남 예산군에 실제 존재하는 살목지를 방문한다는 내용이 SNS로 알려지고, 이것이 다시 언론 매체를 장식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했다.
2024년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스릴러 ‘파묘’가 1188만 명을 동원했을 때도 비슷한 홍보 마케팅이 주효했다. ‘숭헌 것이 나온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게 한 것. IPTV나 OTT에 공개될 시점에는 모두 다 알게 되기에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은 빨리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묘’에는 적어도 실제 지명이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목지’는 예산 광시면에 있는 저수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물론 제작진은 한자가 다르고, 그 저수지에서 공포 체험을 한 사례에 바탕을 뒀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체험일 뿐이다. 더구나 한자 이름을 달리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마케팅 방식이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谷城)과 이름이 같아 논란이 일었다. 제작진은 한자가 다르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마케팅 전략임을 모르는 이들은 너무 순수했다. 관객 65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 ‘곡성’은 공포물 흥행이 언급될 때마다 전남 곡성을 끌어올렸다. 당연히 이번에도 영화 ‘살목지’과 함께 영화 ‘곡성’이 다시금 입에 오르내렸다.
‘살목지’의 실제 배경인 저수지가 있는 동네는 엄연히 생업의 터전이고 주민들의 거주 공간이다. 하지만 영화로 인해 주민들은 야심한 밤에 소음과 고성에 시달려야 했다. 저수지는 방문객들이 남긴 쓰레기와 취사로 더럽혀졌다. 실제 살목지는 낚시는 물론 캠핑과 야영이 금지된 공적 자산이다. 위반하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런 것이 무시되었다.
무엇보다 영화로 인해 그 지역이 공포의 공간으로 각인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경제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타지인들이 와서 낯선 공포감 속에 얻은 모티브를 갖고 외지인들의 공포 파티를 벌이는 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까. 지역 주민은 소수이니 항변을 해봤자 영향력은 미미하다. 식민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인들이 제3세계를 괴물이나 괴생명체가 출몰하는 공포의 공간으로 여긴 것처럼 K콘텐츠 역시 지역을 아직도 그런 관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살목지’는 80만 관객이 손익분기점인데, 관객 260만 이상이 들었다. 지역을 희생해 3배 이상 수익을 남긴 것이다. 이제 만족하고 돌아가야 할 때다. 영화 ‘왕사남’은 지역과의 상생 모델을 보여주었다. 공포물도 이런 점을 헤아려야 한다. 예전의 한국 공포물은 사회적 약자의 한을 풀어주는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좋은 주제의식이 있었는데, 그 전통이 끊어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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