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6년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휴민트’는 제작비 230억 원이 든 대작이다. 류승완 감독 연출,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주연 등을 생각하면 기대감이 컸다. 많은 영화들이 휴민트를 피해서 개봉했다. ‘왕과 사는 남자’도 일찍 개봉했다. 하지만 휴민트는 제작비가 절반도 안 되는 ‘왕과 사는 남자’에 밀렸을 뿐 아니라 손익분기점인 400만은커녕 200만 명도 채우지 못하고 극장가에서 간판을 내렸다. 개봉 49일 만의 일이다. 결국 넷플릭스로 직행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는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가 부당하게 수익을 얻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 수밖에 없다.
대작 한국 영화가 개봉 후 단기간에 글로벌 OTT로 간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위기에 빠진 영화계를 구할 방안으로 홀드백 제도의 법제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휴민트’ 사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홀드백(Hold-back)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후 OTT 등 다른 플랫폼에 공개되는 것을 일정 기간 유예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에는 홀드백 기간을 6개월로 규정했는데, ‘휴민트’는 50일도 안 되어 넷플릭스로 향했다. 프랑스는 애초에 36개월을 유예기간으로 규정했다가 프랑스 영화에 대한 투자 4%를 전제로 넷플릭스는 15개월, 일반 OTT는 17개월로 바뀌었다.
사실 극장에서 관객이 많이 들지 않은 영화는 다른 수익을 찾는 게 맞다. 그런데 ‘휴민트’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휴민트’가 넷플릭스로 직행한 것은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세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프랑스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다. 프랑스는 한 영화가 배정받을 수 있는 개봉관을 최대 20~30%대로 제한한다. 한국이 이런 스크린 할당정책이 있었다면 ‘휴민트’는 극장에 좀 더 오래 걸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관 1658개로 출발 최대 2170개까지 독점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흥행하는 영화에 몰아주는 상영 방식 덕분이다. ‘왕사남’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한 영화가 스크린은 과독점하는 현상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영화적 다양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한 영화당 스크린 수에 제한이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영화는 관객몰이 영화를 피해 개봉하게 되고, 관객의 선택지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시기에 영화 개봉이 몰리게 되고, 좋은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될 수 있다. 또 다른 쏠림으로 인해 작품성과 별개로 손익분기점조차 채우지 못하고 실패할 확률이 커진다.
한편으로 넷플릭스 흥행을 본다면 과연 ‘휴민트’가 막대한 제작비를 들일 영화였는지도 생각해볼 만하다. 제작비를 낮췄다면 오히려 극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것이다. 복고적 누아르 영화 콘셉트에 맞춰 수요자들에게 맞는 규모의 제작비를 투여했더라면 괜찮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바로 넷플릭스가 증명한 셈이다. 어차피 넷플릭스는 기본적으로 장르물 마니아들을 위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전종서 한소희 주연의 ‘프로젝트Y’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1월 21일 개봉했다가 고작 14만 명을 동원하고 순식간에 내려왔다. 한데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휴민트’와 마찬가지로 장르물이기 때문에 OTT 콘텐츠와 차별성이 덜하다. 애써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주요 관객층인 여성들이 선호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영화 ‘휴민트’도 여성을 다루는 관점이나 연출, 설정에서 관객들이 불편해할 부분이 다수 있었다.
‘프로젝트Y’는 애초에 극장용이 아니라 OTT용으로 제작됐다면 더욱 각광받았을 것이다. 제작비를 줄이고 플랫폼을 다변화하는 것이 수익 보전이나 증대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오히려 홀드백으로 이런 영화를 극장에 6개월 이상 걸리도록 한다면, 수익을 다변화할 수도 없고 다른 영화의 스크린까지 잠식할 수 있다.
요컨대 영화 장르나 작품 특성에 따라 수요층은 달리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 관객이 찾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실패했다거나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콘텐츠라도 그 콘텐츠를 선택하는 관객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처럼 극장에서 모든 수익을 채워야 하는 미디어 환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맞게 한국 영화 산업도 비즈니스 모델을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 수익 규모에 맞게 영화 규모를 적절히 기획, 제작해야 하고, 극장 스크린이 한 작품에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스크린 상한제도 적용되어야 한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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