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새로운 망원경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비밀을 드러낸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올라가자마자 천문학자들은 우주 곳곳에서 이상하게 휘어진 은하들의 모습을 발견했고, 우주가 사실 구석구석 휘어지는 시공간의 파도로 출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이런 중력 렌즈 이미지는 아무데나 찍어도 항상 찍히는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조차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당황스러운 모습을 연이어 보여준다. 특히 제임스 웹은 우주 끝자락, 아주 먼 과거의 우주를 들여다보는데 우주 끝에 너무나 많은 붉은 반점이 나타난다. 이 붉은 반점은 LRD(Little Red Dots)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평범한 원시 은하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아주 먼 우주에 빛나는 거대한 별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너무 흔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가끔 어쩌다 하나 발견되는 정도라면 그냥 초기 우주에 있던 이상한 천체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LRD는 초기 우주의 지극히 일반적인 풍경처럼 보인다.
붉은 반점은 은하의 진화 과정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싱링크를 풀기 위해 탐색하던 중 처음 발견했다. 거의 모든 은하 중심에는 거대한 블랙홀이 숨어 있고, 그 블랙홀의 질량은 은하의 질량과 깔끔하게 비례한다. 사실 질량 비율로 보면 은하 중심 블랙홀은 은하 전체 질량의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상대적으로) 작은 블랙홀이 그 거대한 은하의 질량과 깔끔한 법칙을 따라간다는 점은 분명 블랙홀과 은하의 공진화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문제는 은하 중심 블랙홀의 정확한 기원을 모른다는 점이다. 훨씬 가벼운 별 질량 블랙홀의 경우, 무거운 별의 붕괴를 통해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은하 중심 초대질량 블랙홀은 아직 확실치 않다. 심지어 은하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그 중심에 물질이 뭉쳐서 블랙홀이 만들어진 건지, 아니면 우주 초기에 블랙홀이 먼저 태어나고 그 주변에 물질이 모이면서 지금의 은하가 만들어진 건지도 확실치 않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이 우주 끝까지 들여다본다면, 태초의 초대질량 블랙홀이 빚어지는 현장을 보게 될 거라 기대했다.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주변 물질을 끌어당기고, 주변에서 아주 빠르게 맴돌게 한다. 그래서 블랙홀 주변의 빛은 극단적인 도플러 효과를 겪게 되고, 스펙트럼에서 그 방출선의 파장이 양쪽으로 더 넓게 퍼져 보인다. 이것을 선폭 증가라고 부른다. 스펙트럼에서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면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임스 웹 관측을 통해 이렇게 넓은 선폭을 보이는 천체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사진 속 모습은 더 당황스러웠다. 그 정도로 아주 빠르게 물질이 맴돌고 있다면 당연히 그 크기도 아주 커야 한다. 그런데 정작 사진 속에 나타난 붉은 반점의 모습은 너무나 작았다. 그렇다는 건 이 천체가 질량은 아주 무겁지만 크기는 아주 작은 매우 컴팩트한 밀도 높은 덩어리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은하도, 블랙홀도 아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천체다.
아주 선명한 붉은 빛도 의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거대한 블랙홀이 아주 두껍고 짙은 먼지 구름에 싸여 있기 때문에 많은 적외선 빛을 방출한다고 볼 수 있다. 거대한 먼지 구름 속에 활동성 은하가 숨어 있는 경우, 실제로 가까운 은하에서도 강한 적외선이 관측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런 활동성 은하는 적외선뿐 아니라 엑스선, 감마선과 같은 더 강한 빛도 함께 방출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포착된 LRD는 오직 새빨간 적외선만 선명하게 내뿜는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별의 개수가 적고 아주 가벼운 원시 은하가 그 중심에 덩치에 맞지 않게 아주 무거운 블랙홀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블랙홀이 먼저 덩치를 키우고, 그 다음에 물질이 모여 은하가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가설의 증거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치게 컴팩트한, 즉 땅땅한 덩어리는 기존의 표준 우주 모델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시뮬레이션으로도 이런 천체는 잘 재현되지 않는다. 초기 우주의 진화 방식이 우리가 그동안 평화롭게 생각한 그림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연구는 LRD의 정체가 거대한 가스 구름이 한꺼번에 붕괴한 일명 ‘직접 붕괴 블랙홀’이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가스 구름이 별을 만드는 과정도 건너뛰고, 초신성 폭발 같은 과정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붕괴하면서 태양 질량의 1000배 가까운 원시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더 많은 물질을 집어삼키고, 자기들끼리 합체하면서 결국 오늘날의 은하 중심에 살아가는 태양질량 수천만 배 이상의 거대한 초대질량 블랙홀로 자라날 수 있다.
직접 붕괴 블랙홀은 초대질량 블랙홀의 씨앗으로 여겨지지만, 아직 실제 관측으로 존재가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LRD의 정체가 바로 이 전설 속의 직접 붕괴 블랙홀일 거라 주장한다. 직접 붕괴 블랙홀의 형성 과정을 시뮬레이션했고, 그때 주변에서 어떤 종류의 빛, 스펙트럼이 관측되어야 할지를 재현했는데, 그 모습이 현재 제임스 웹이 포착한 LRD의 전형적인 모습과 비슷하다.
그 결과가 상당히 흥미롭다.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을 두고, 그 주변에 지극히 평범한 먼지 구름으로 가려놓기만 하면 된다. 블랙홀 주변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먼지 구름이 흡수하고 다시 재방출하면서 대부분 적외선 쪽에 치우친 붉은 빛만 뿜어낸다. 그리고 정확히 LRD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진다. 여기에서 별은 필요하지 않다. 별이 하나도 없고 오직 수소 가스와 먼지 구름만이 블랙홀을 감추고 있는 경우여야 정확한 LRD의 스펙트럼이 재현된다.
다른 일반적인 활동성 은하와 달리 LRD에서 감마선, 엑스선이 잘 관측되지 않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순식간에 거대한 구름이 붕괴하고 거대한 블랙홀이 만들어질 정도라면, 애초에 그 먼지 구름은 밀도가 상당히 높아야 한다. 아주 빽빽한 먼지 구름 속에 블랙홀이 숨은 탓에 어지간한 에너지로는 먼지 구름을 꿰뚫을 수 없고, 블랙홀이 뿜어내는 평범한 수준의 엑스선은 그대로 흡수된다. 먼지 구름이 흡수한 엑스선을 다시 적외선으로 방출하면서 LRD를 더욱 붉게 물들일 뿐, 다른 강력한 엑스선 방출은 검출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런 모델에 더 극적인 이름을 붙이는데, 바로 블랙홀 스타다! 중심에 블랙홀이 있고, 그 외곽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별처럼 밀도 높은 가스 구름이 둘러싸고 블랙홀을 품은 형태다. 게다가 초기 우주에 있는 천체이기 때문에, 가스 먼지 구름은 대부분 순수한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중심에 블랙홀을 품은 거대한 수소 덩어리, 정말 블랙홀을 품은 거대한 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주는 너무나 기이하다. 특히 과거의 우주로 거슬러갈수록 더 기이해진다. 우주는 그저 평범한 별과 은하만으로 채워진 세계일 거라 생각했지만,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주아주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는 지금의 우주가 기이한 모습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지금의 평범한 별과 은하도 언젠가 모두 사라지고 우주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형태의 천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우주의 새로운 주류를 차지하며, 오늘날의 별과 은하를 기이한 존재로 만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새로운 LRD가 될 것이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6arXiv260114368P/abstract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25/09/aa54681-25/aa54681-25.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날마다 우주 한 조각’, ‘별이 빛나는 우주의 과학자들’, ‘갈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코스미그래픽’ 등을 번역했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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