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용노동부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민간 채용 플랫폼과 협업해 노동법 준수 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임금 체불이나 산재, 직장 내 괴롭힘이 없는 회사를 구직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청년들은 “문제가 없는 기업을 인증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문제 있는 ‘블랙기업’을 공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9월 10일 관계 부처 합동 청년 일자리 대책인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를 발표하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구직자가 체불·산재·괴롭힘 없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도록 민간 채용 플랫폼과 협업하고, 기업이 채용 공고를 올릴 때 동의하면 노동부가 그 기업의 법 준수 여부를 인증해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인 준수를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개 대상으로 고려하는 항목은 △임금 체불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이다. 노동부는 우선 자체 고용 서비스 플랫폼인 ‘고용24’에 도입한 뒤 민간 플랫폼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예찬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문제 있는 사업장을 드러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지만, 문제가 없는 사업장이라는 정보도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청제라는 구조적 한계가 지적된다. 문제 있는 기업일수록 인증 신청을 피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일부 기업만 비교 대상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경북대 학생 김상천 씨는 “모든 기업의 준수 여부가 확인되어야 하고, 블랙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현행 법상 블랙기업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형선 고용노동부 공정채용기반과 사무관은 “사업자 정보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동의 없이 공개할 수 있다”며 “현재 임금 체불 사업주나 산업재해 발생 공표 제도 역시 법률에 근거해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임금 체불의 경우 체불액 3000만 원 이상에 3년 내 2회 이상 유죄 판결을 받았어야 하고, 산재는 △1년간 사망자 2명 이상 △업종 평균 이상 사망률 △산재 은폐 등 조건을 충족해야만 공표된다. 그마저도 법원 판결이 확정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어떤 기준과 데이터로 인증할 것인가가 제도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지적한다. 임금 체불이나 산재 외에도 △최저임금 준수 △4대 보험 가입 △초과근무·주휴 수당 지급 여부처럼 구직자가 실제로 고려하는 조건까지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성 청년 입장에서는 여성 친화적 기업인지, 성희롱 발생 여부가 있는지도 중요한 정보다.
직장 내 괴롭힘은 현재 공표 제도가 없고, 단순히 발생 건수만 공개할 경우 기업이 은폐에 나설 우려가 있다는 점도 논란이 된다. 배가영 직장갑질119 대변인은 “괴롭힘 발생 이후 공정한 조사와 피해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며 “관련 내규와 교육 여부를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참고한 청년유니온의 ‘한국형 블랙기업 지표 개발 연구’ 역시 인턴·수습 남용, 초과근무 강요, 휴가 제한 등을 지표로 제시했다. 연구 책임자였던 정준영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한 청년을 착취하는 기업 행태가 있다”며 “청년이 특히 취약한 노동조건 정보까지 공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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