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국가핵심기술 지정에서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의약품 수출을 견인하는 주요 품목 중 하나인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일각에선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경쟁력을 확보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과감히 도전할 수 있도록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해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0년 처음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을 때와 산업환경이 크게 변화했지만 여전히 국가핵심기술로 남아 있어, 업계에서 기업활동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러시아와 인도, 이란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도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상업화해 시판하는 등 세계 15개국 30곳 이상의 기관 및 기업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이라는 규제를 해소하는 데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23년부터 제약바이오협회 차원에서 글로벌 시장에서 국부를 창출하는 데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지속 건의했고 대한상공회의소에도 킬러 규제라는 점을 설명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시대적 필요 때문에 규제를 할 수 있는데 5~10년이 지나 산업계와 전문가가 합리적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국가핵심기술로 계속 지정돼야 하는 이유를 산업기술보호위원회가 증명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단법인 한국시민교육연합 K-바이오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지난 12~24일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생산 및 판매하는 국내 제약사 18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대웅제약, 종근당, 휴온스바이오파마, 파마리서치바이오, ATGC 등 14곳(82.4%)도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찬성했다. 해외 파트너사들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과도한 규제로 인식해 글로벌 진출 및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또 핵심 제조공정은 공개돼 있고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구매가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기보다는 개별 특수공정에 한해 특허로 보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 시 국가안보와 경제, 공중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희소성과 전략성이 높은 기술을 의미한다.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계, 자동차·철도, 금속, 원자력, 우주, 바이오 등 13개 분야 80여 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런 기술과 관련한 제품을 수출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합작·외국인 투자·M&A(인수합병)를 하려면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사전심의도 받아야 한다.
보툴리눔 톡신 규주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탓에 글로벌 출시 시기가 늦어져 시장 선점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수출 승인까지 평균 74일, 최대 12개월 이상 소요돼 연간 900억~1000억 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해외 수출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약하고 있다”면서 “보툴리눔 톡신은 혁신기술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하고 쉬운 기술이고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도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영업비밀성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보호가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세한 우발업체에 대관업무라는 불필요한 부담까지 지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 수출액은 1560억 원으로 전년보다 33% 증가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포함한 국내 기업의 지난해 독소 및 항독소 수출액은 1억 5075만 달러(2115억 원)로 유전자재조합의약품(28억 104만 달러, 3조 9296억 원), 혈장분획제제(1억 8236만 달러, 2558억 원)에 이어 바이오의약품 제제 중 3위를 차지했다. 보툴리눔 톡신이 의약품 수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일각에선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디톡스와 메디톡스 자회사 뉴메코, 휴젤 등 3곳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가능성 차단 △국가안보 및 국민안전 △해외 기업에 대한 기술 종속 및 불공정경쟁 방지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에서는 애브비, 입센, 멀츠 등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개발한 업체가 얼마 없지만 국내에서는 약 20곳이 출시했는데 이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철저히 보호하고 관리해서 가능했다고 본다”면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가쉽게 발견할 수 있더라도 상업화가 가능한 균주는 극소수에 불과해 기술 보호가치가 높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메디톡스의 법정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우의 박정수 변호사는 토론회 말미 발언권을 얻고 “현재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생산기술을 놓고 소송을 진행 중인 업체들이 책임을 경감하기 위해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논의가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보툴리눔 톡신 기술 균주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광준 바이오융합산업과 과장은 “국가안보·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업체 및 관련 전문가 의견을 균형적으로 청취하고, 산업기술보호법상 절차와 기준에 따라 국가핵심기술 지정 및 해제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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