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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남겨진 자의 슬퍼할 자격과 사랑할 용기 '러브 미'

상실과 죄책감 끌어안은 이들이 다시 사랑을 마주하다…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 '압권'

2026.01.09(Fri) 12:52:34

[비즈한국]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 남겨진 가족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엄마 미란(장혜진)과 마지막 만남에서 냉랭한 말을 던졌던 딸 서준경(서현진)은 엄마와 ‘다음’이 없다는 것이 황망하다. 병상에 있는 아내와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자 정년을 몇 년 남겨두고 직장을 그만둔 남편 서진호(유재명)도, 목표를 정하지 못한 대학원생이라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아들 서준서(이시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란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들 모두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부모의 결혼기념일 35주년으로 온 가족이 모였지만, 분위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엄마와 딸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그날, 엄마가 떠난다. 사진=JTBC 제공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준경에겐 옆집 남자 주도현(장률)이 다가온다. 이웃에 살면서 어쩌다 보니 준경의 외로움을 알아본 남자다. 진호는 아내와 함께 떠나려던 결혼 35주년 기념 여행 패키지에서 만난 가이드 진자영(윤세아)이 눈에 든다. 자신처럼 배우자를 사별한 아픔을 갖고 있지만, 자신의 인생을 꿋꿋이 살고 있는 자영이 진호에겐 새로운 기운을 준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여자친구 윤솔(김샤나)을 사랑하면서도 끝없이 그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던 준서는? 오랜 시간 함께한 여사친 지혜온(다현)의 고백에 예정에 없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홀연히 떠나버린 엄마. 그로 인해 가족에겐 모두 저마다 상실이 생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의 시기에 또 다른 존재들이 찾아온다. 사진=JTBC 제공

 

문제는 타이밍. 사람은 죽었어도 남은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당연한 그 삶의 지속이 남은 사람들에겐 때로 죄책감이 되곤 한다. 어느 정도는 떠난 사람을 기리며 애도를 표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거다. 심지어 사랑? 자식인 준경도 도현의 다가섬에 설레면서도 ‘이 타이밍에 이게 맞나’ 생각하고, 여자친구의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준서도 자신을 구제불능이라 탓하는 마당이다. 그러니 남편인 진호의 죄책감은 한층 더하다. 아내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사랑을 맞은 진호는 불륜이 아님에도 불륜을 저지르는 것 같은 생각에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까지 할 정도다.

 

외모도, 능력도 빠지지 않지만 외로웠던 준경. 그러나 한사코 그 외로움을 들키지 않고자 혼자였던 준경은 엄마로 인해 다음이 없을 수 있단 사실을 깨닫고 옆집 남자 도현을 마음에 들인다. 사진=JTBC 제공

 

물론 진호의 고해성사를 들은 젊은 신부님도 떠난 미란이 진호가 불행하게 살길 바라지 않을 거라며 ‘입바른 사이다’를 던지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가족 일이라면 그렇게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는데, 오랫동안 헌신적이던 아빠가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아 엄마보다 젊고 예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걸 과연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 자식의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도 주변의 시선이 두려울 법하다. 그러니 아무리 대단한 사랑이 나타났다 한들, 비난을 감내할 각오로 그 사랑 앞에 자신이 온전히 용감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내와 함께 가려던 제주도 패키지여행에서 만난 가이드 자영을 사랑하게 된 진호. ‘비밀의 숲’에서 호흡을 맞췄던 유재명과 윤세아가 다시 만나 반가움을 안긴다. 사진=JTBC 제공

 

‘러브 미’는 사랑을 떠나보낸 이들이, 가족들이 각자의 사랑을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얼핏 사랑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쉬운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 이 드라마는 사랑을 대하는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라 말한다. 드라마 제목이 ‘러브 유’가 아니라 ‘러브 미’인 것도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준경. 준경은 오래도록 외로웠다. 7년 전 자신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오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이후, 끝없는 자기혐오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준경은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그 관계에서 도망쳤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도망친 사람은 다른 행복을 붙잡을 여유가 없어진다. 2회에서 나온 준경의 내레이션을 보라.

 

엄마도 떠났고, 여자친구 솔도 떠났다. 그런데 유치원 때부터 함께한 친구 혜온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준서는 이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있을까? 사진=JTBC 제공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에게. 붙잡고 싶었다. 멈추라고. 지금 이렇게 도망치면 계속 도망치게 될 거라고. 계속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혼자 외로울 거라고.’

 

‘러브 미’는 사랑이 만병통치라는 구원 서사를 말하진 않는다. 여전히 사랑에 서툴지만, 그저 열심히 사랑하기로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보는 건 어때’ 하고 작은 응원을 던질 뿐이다. 그 결심을 하기까지의 그들의 내면을 찬찬히 어루만질 뿐이다.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이 드라마가 마주하게 하는 온갖 삶의 감정들은 소수 시청자들에게 깊이 감응하는 모양새다. 여기엔 서현진, 유재명 같은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의 이해’ ‘은중과 상연’ 등 전작에서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다면적인 내면을 포착해 온 조영민 PD의 섬세한 연출도 한몫 한다. 무거울 듯하지만 곳곳에 설치된 소소한 블랙 코미디 역시 ‘러브 미’를 재미나게 보게 되는 이유.

 

준경네 가족의 새로운 사랑은 주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준다. 진호의 사랑은 언니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처제의 분노를, 준경의 사랑은 아빠의 존재를 빼앗길까 두려운 도현의 아들 다니엘의 경계를 산다. 사진=JTBC 제공

 

힘들지 않은 척, 외롭지 않은 척, 모든 괜찮은 척을 하느라 힘에 부친 어른들에게 ‘러브 미’를 추천한다. 괜찮으려고 솔직하지 못했으나 오히려 더 괜찮지 않아진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주길.

 

‘러브 미’는 배우들의 흡인력 있는 연기에 매료되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배우자를 상실한 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과정에서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유재명의 연기는 압권. 사진=JTBC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처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 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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