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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팔아선 못 버틴다' 독립서점이 살아남는 법

신규 개점 수 급감, 팽창기 지나 생존기 진입…지역 연계·독서모임·동네 관계 등 공간 의미 재해석

2026.03.25(Wed) 14:12:58

[비즈한국] 한때 문화 트렌드의 상징처럼 빠르게 늘어나던 독립서점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11년간 한국 독립서점을 안내해온 플랫폼 ‘동네서점’이 발간한 ‘2025 동네서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독립서점의 연간 신규 개점 수는 2018년 143곳에서 2025년 36곳으로 크게 줄었다. 업계에서는 독립서점이 팽창기를 지나 생존 교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독서 인구는 줄고 책 구매는 온라인과 대형서점으로 쏠리면서, 동네 책방은 이제 책만 팔아서는 버티기 어려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자리를 지킨 서점들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독서모임과 전시, 지역 협업, 주민 교류 등을 더하며 책방의 쓰임을 넓혔다. 책을 많이 진열하는 것보다 ‘서점에 들를 이유’를 만드는 일이 관건이 됐다.

 

#골목 안 작은 책방, 지역과 함께 살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창신책방’은 그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신동의 좁은 골목 안에 자리한 이 작은 책방은 책을 사서 나가는 공간이라기보다 머물러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가깝다. 창신책방 책방지기 남용섭 씨는 “책만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3월 23일 오후 4시경, 8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대화를 나누거나 모임을 하는 사람들로 대부분 차 있었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 골목에 위치한 창신책방. 사진=정원혁 인턴기자

 

창신책방은 이런 ‘공간성’을 운영에 적극 활용한다. 책 판매 외에도 공간 대여와 북콘서트 등으로 수익을 낸다. 대여 공간은 책과 관련된 행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외국인 모임, 와인 수업 등 다양한 행사에도 공간을 열어둔다. 남 씨는 “북콘서트나 작가 전시회 외에도 다양한 행사에 공간을 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과의 상생도 창신책방의 중요한 수익원이다. 창신동 봉제거리에서 나온 폐원단으로 북커버와 파우치 같은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고, 제작 과정에는 은퇴한 봉제 노동자들도 함께한다. 인근 게스트하우스와 협업해 음식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재료는 주변 시장에서 구하고 메뉴는 기존 상권과 겹치지 않도록 짠다. 지역 산업의 흔적과 동네 자원을 책방의 상품과 서비스로 엮어낸 것이다.

 

창신책방 내부. 책들과 함께 책방에서 제작한 굿즈를 판매한다. 사진=정원혁 인턴기자

 

#10년 단골이 만든 동네 사랑방

 

서울 노원구 주택가 모퉁이에 자리한 ‘지구불시착’은 확장보다 오래 쌓인 관계의 힘으로 유지되는 서점이다. ‘동네서점’ 플랫폼에서 인기가 높은 이곳은 10년 가까이 한 동네에서 자리를 지키며 단골과 주민이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공간이 됐다. 책방지기 김택수 씨는 이곳을 “사랑방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여기 오는 손님들은 올 때마다 보는 얼굴들이다 보니 결국 다 아는 사이가 된다. 그런 점이 좋다”고 했다. 주민들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책방에 ​한 번씩 들르고, 책방지기 김 씨 역시 공동체 행사 때 포스터나 현수막을 그려주며 동네와 관계를 이어간다.

 

서울 노원구 공릉로에 위치한 지구불시착은 행사 참여 조건으로 참가비 대신 책 한 권 구매를 내걸기도 한다. 사진=정원혁 인턴기자

 

이 사랑방 같은 공간은 수익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구불시착에서는 책읽기 모임, 글쓰기 모임, 일본어 수업 같은 프로그램이 참가비를 받고 정기적으로 열린다. ‘침묵의 떡국 독서’ 같은 독특한 행사도 마련하는데, 참가비 대신 책 한 권 구매를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그곳에선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한옥 책방 ‘서촌 그 책방’을 찾아간 24일, 일일 책방지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은 독서모임을 전문으로 하는 서점으로, 책방지기 하영남 씨는 독서모임 강사로 오래 활동했다. 이날 책방을 지킨 일일 책방지기도 독서모임 멤버다. ​

 

일일 책방지기는 서점을 한마디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한 달에 한 권을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모임 뒤에는 저자를 초청해 독자와 대화하는 자리가 이어진다. 작은 파티와 글쓰기 모임, 책 만들기 모임도 수시로 열린다. 참여자 연령대도 20대부터 70대까지 폭넓다. 동네 주민만 찾는 공간도 아니다. 일일 책방지기는 “가장 먼 참여자는 경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책방은 어른들이 선결제를 하고 그 돈으로 학생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

 

책 판매 수익 만으로 독립서점이 운영되기는 사실상 어렵다.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체험을 돈으로 바꾸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색되는 이유다. 사진=정원혁 인턴기자

 

독서모임과 북콘서트, 드로잉이나 책갈피 만들기 같은 문화 수업에서 발생하는 참가비와 회비는 책 판매와 함께 책방의 든든한 수입이 된다. 일일 책방지기는 “이 공간이 유지되는 건 공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 덕분”이라며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이런 다양한 균형이 잘 맞은 상태로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서점의 생존 방식은 제각각이다. 독특한 콘셉트로 차별화를 꾀하거나, 모임과 큐레이션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도 있다. 그러나 오래 버텨온 서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책 판매에만 기대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원을 넓히면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팽창기를 지난 뒤 살아남은 독립서점들에게 중요한 것은 책을 몇 권 더 파느냐가 아니다. 책방의 고유한 특성과 경험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

정원혁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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