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부동산 시장이 짙은 안개 속에 갇혀 있다. 매수자와 매도자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인해 거래량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장 참여자들은 불안하다. 어제는 신고가가 나왔다는 뉴스가 들리더니, 오늘은 급매물이 쌓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도대체 시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습관처럼 ‘매매 가격’의 추이를 살핀다. KB시세나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동향을 보며 “이번 주는 0.05% 올랐으니 상승장” 혹은 “0.03% 떨어졌으니 하락장”이라고 일희일비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지금과 같이 거래량이 말라붙은 상황에서 매매 가격의 등락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매매 가격의 평균값은 '통계적 착시'일 가능성이 높다. 모집단(거래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출된 평균은 극단적인 특이값(outlier) 하나에도 춤을 춘다. 사정이 급한 집주인이 던진 단 하나의 급매물이 그 단지의 시세를 대변할 수 있는가? 반대로, 로열동 로열층의 최고가 거래 한 건이 전체 시장의 반등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개별적인 ‘사건’일 뿐, 시장의 ‘추세’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봐야 할까?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에서 나침반은 바로 ‘전세 가격’이다. 투기적 가수요가 완전히 제거된, 오로지 ‘거주’라는 실사용 가치만으로 결정되는 전세 가격이야말로 지금 시장의 바닥과 천장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다.
#왜 지금 ‘전세’인가? 허수(虛數)와 실수(實數)의 차이
부동산 가격은 크게 두 가지 가치의 합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 집에서 살면서 얻는 효용 가치인 ‘사용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 ‘투자가치’다.
※매매 가격=사용가치(전세)+투자가치(프리미엄)
상승장에서는 투자가치(프리미엄)가 비대해진다. ‘지금 사면 더 오른다’는 기대감이 가격을 밀어 올린다. 하지만 하락장이나 조정장, 혹은 지금과 같은 관망세가 짙은 시기에는 이 거품이 꺼진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매매 가격은 허공에 뜬 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매수자가 사라지면 호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반면, 전세 가격은 철저하게 ‘실수(實數)’의 영역이다. 전세를 끼고 갭투자를 할 수는 있어도, 전세 자체를 투기 목적으로 얻는 사람은 없다. 전세는 당장 오늘 밤 내 몸을 뉘일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와 공급이 치열하게 만나는 지점이다.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사람들은 집이 필요하다. 집을 사기 두려운 시기일수록, 대중은 매매 대신 전세나 월세를 선택한다.
이 지점에서 역설이 발생한다. 매매 시장이 얼어붙어 사람들이 집을 사지 않으려 할 때, 그 수요는 고스란히 임대차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매매 거래가 멈춘 순간에도 전세 거래는 꾸준히 일어난다. 즉, 데이터의 신뢰도 측면에서 지금은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훨씬 더 풍부한 표본과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시장을 판단하는 대전제는 이것이다. ‘매매가가 떨어지더라도 전세가가 버티거나 오르고 있다면, 그 시장은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 매매가가 버티더라도 전세가가 무너지고 있다면, 그 시장은 곧 붕괴한다.’
#전세가 보내는 시그널-‘하방 경직성’과 ‘밀어 올리기’
전세 가격이 시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핵심은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의 변화다.
첫째, 하방 경직성의 확보, 즉 바닥 다지기다.
부동산 하락기에도 전세 가격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단지는 가격 방어력이 좋다. 매매가가 하락하여 전세가에 근접하면, 더 이상 떨어지기 힘든 '바닥'이 형성된다. 집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5억 원짜리 아파트의 전세가 4억 5000만 원이다. 급하게 팔아야 한다고 해도 전세 보증금을 내주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차라리 버티기를 택한다. 또한, 실수요자 입장에서도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갭)가 5000만 원에 불과하다면 ‘이 돈이면 차라리 사겠다’는 매수 전환 수요가 발생한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하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 매매가를 밀어 올리는 힘, 즉 상승 에너지 축적이다.
더 나아가 전세 가격의 상승은 매매 가격 상승의 선행 지표다. 전세 물량이 부족해 전세 가격이 계속 오르면, 세입자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2년마다 올려줘야 하는 보증금과 이사 비용, 주거 불안정 스트레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세입자는 매수자로 돌아선다. 또한, 갭이 줄어들면 투자자들의 진입 장벽도 낮아진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형국이 된다.
지금처럼 거래량이 마른 시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데이터는 명확하다. 거래량은 적지만, 전세 호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는가? 전세 매물이 쌓이지 않고 빠르게 소진되는가? 월세 전환율이 높아지면서 전세의 희소성이 부각되는가? 이 조건들이 충족되는 지역은 겉보기에 매매가가 정체되어 있을지라도, 수면 아래에서는 에너지가 끓어오르고 있는 곳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것은 '데이터'다.
시장 분위기가 흉흉할 때 대중은 움직이지 않는다. 거래량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 모두가 멈춰 있을 때, 남들보다 반발자국 앞서 움직인 사람들이 부의 사다리에 올라탔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스마트폰을 켜고 네이버 부동산이나 호갱노노를 여는 것이다. 그리고 관심 있는 단지의 ‘매매가’가 아닌 ‘전세가 추이’ 그래프를 클릭하라. 매매 그래프가 횡보하거나 꺾여 있는데, 전세 그래프가 우상향하며 갭을 메우고 있는가? 전세 매물 개수가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는가?
그곳이 바로 기회의 땅이다. 평균의 함정에 속아 시장 전체를 비관하지 마라. 매매가는 거짓말을 해도, 전세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화려한 호가 뒤에 숨겨진 탄탄한 전세의 암반을 찾아내어, 다가올 상승의 파도를 준비해야 할 때다. 거래량이 터지며 매매가가 치솟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늦다.
흔들리는 시장에서 중심을 잡고 싶다면, 기억하라. 전세가 오르는 곳에 길이 있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다시쓰는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 설명서(2025)’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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