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BS 드라마 ‘김부장’이 K-테이큰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008년 작 리암 리슨 주연의 영화 ‘테이큰’과 콘셉트가 비슷해서다. 주인공이 딸을 구하려고 분투하는 스토리라인인데, ‘테이큰’에서는 딸이 국제인신매매조직에 납치되지만,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학교 폭력과 그와 연관된 살인에 연루된다. 더구나 주인공인 아빠가 힘숨찐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힘숨찐은 무엇일까.
원래 힘숨찐은 2010년대 웹소설에 등장한 캐릭터 유형이다. ‘힘을 숨긴 찐따’라는 뜻인데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처음에 보면 외모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능력을 숨긴 인물이라는 클리셰를 조롱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서사의 주인공이 점차 폭넓은 인기를 얻게 되면서 힘을 숨긴 진짜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확장된다.
영화 ‘테이큰’에서는 사실 아빠가 힘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내공이 상당할 것으로 짐작이 되고 전직 CIA 요원이라는 점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힘숨찐 캐릭터와 다르다.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철저하게 숨긴다. 아빠는 평범한 회사에 근무하고 직장인이자 아빠로서 일상이 남다를 게 없다. 오히려 소심하고 지질해 보인다. 동네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서 맞거나 모욕을 당해도 감내한다. 딸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상대 학생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선처를 호소한다. 딸을 알아서 전학시키겠다는 모습은 무력해 보인다. 누가 봐도 지질하게 보일 수 있고, 딸과 사이도 틀어진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전직 북파공작원이자 암살 요원이다. 비밀이 노출되면 자신은 물론 특히 딸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철저히 숨겨야 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설정은 이미 2020년 개봉한 영화 ‘아저씨’에 등장했다. 특작부대 요원이었던 차태식(원빈)은 불의의 역공작으로 딸과 아내를 잃고 그 죄책감으로 전당포를 하며 은둔한다. 그러다 평소 잘 아는 소미가 마약과 불법 장기 적출 범죄 조직에 연루되자 소미를 구출하려 분투하게 된다.
영화 ‘아저씨’에서는 구출하려는 대상이 딸이 아니고 옆집 아이였는데,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아내가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는 설정을 통해 부성애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즉 딸에 대한 각별함과 분투의 깊이를 체감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이웃집 아저씨가 아빠가 되어 되돌아온 셈이다. 무엇보다 아빠가 중년의 힘숨찐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힘숨찐에 열광할까.
우선 통쾌함이 있을 것이다. 유약하거나 지질한 인물인 줄 알았지만, 엄청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반전의 카타르시스 효과다. 특히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할 때 혼내주는 장면이 필수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못되거나 악한 사람이다. 오만하거나 무례한 이들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설정에서 응징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이들은 시청자들을 언제인가 괴롭혔던 누군가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시청자는 주인공에게 동일시와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평소 부당하게 당하기만 한 자신을 돌아보고, 마치 자신을 대리한 듯 못되거나 가해한 이들을 혼내주는 주인공을 보며 간접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한편으로 자신도 주인공처럼 숨겨진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대리 투영되는 면도 있다. 언더 독 효과도 작용한다. 위기에 몰린 개를 응원하여 다시금 상황을 뒤바꾸는 역전의 순간에서 극적 쾌감을 느끼려 한다.
이에 더해 이 드라마에서는 중년 아빠의 이미지를 전복한다. 대외적으로 무기력하고 집에서만 큰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에서 위기에 처한 딸을 직접 구할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능력을 숨기기 위해 온갖 굴욕과 수치감을 모두 인내하는 점에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인내 끝에 에너지를 폭발하는 것은 정당해 보이고 크게 공감된다. 사실 중년 부모들은 자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력 구제할 역량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이런 콘텐츠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다.
물론 ‘소지섭 효과’도 있다. 훤칠하고 매력이 넘치는 그가 오랜만에 안방 나들이를 했기 때문에 올드 팬들이 운집해 초기 시청률이 높게 나온 면이 있다. 하지만 ‘김부장’의 아빠 캐릭터는 이미 2012년 영화 ‘회사원’, 2025년 넷플릭스 ‘광장’을 잇는 계보에 있다. ‘광장’에서는 동생을 위해 복수에 나서는 데 반해, ‘김부장’에서는 복수의 대상이 딸을 해친 자들이다. 여기에 스케일도 커서 조폭 출신 건설기업 회장, 북한 공작원, 한국 정보부까지 그를 해치려는 삼중 포획과 살해 위협 속에서 딸을 찾는다. 초기에는 이러한 힘숨찐과 테이큰 서사, 나아가 복합적 위기에 분위기가 고조될 것이 분명하다. 남북 북단 상황까지 섞였으니 더욱 한국적 테이큰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긴 호흡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라인의 몰입을 유지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 서사의 끝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단순히 가족 지키기일까 아니면 사회적 메시지까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 여운과 울림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N 차 시청은 물론 시즌2도 가능할 것이다. 초기 시청률보다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것이 더 중요한 글로벌 OTT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드라마가 단순히 학교 폭력의 사적 복수 차원에만 머물 수는 없는 것은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수준을 높여놨기 때문인데 이보다 더 진일보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는 셈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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