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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덕질이 귀를 즐겁게 하리라 '오디움'

최고의 오디오+쿠마 켄고의 건축+하라 켄야의 디자인+재벌 회장의 덕력이 더해지면…

2026.06.18(Thu) 10:57:58

[비즈한국] 취미의 끝판왕 중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오디오(음향)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나오기 어렵고, 그만큼 들이는 비용 또한 어마무시하기 때문. 오죽하면 ‘오디오 하다가 패가망신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무언가에 빠졌을 때 우리는 상상하곤 한다. ‘내가 만약 돈과 여유만 있었다면 이것도 저것도 해볼 텐데’ 하는 상상. 그 상상의 끝판왕을 현실에서 만났다. 서울 서초구 끝자락, 조용한 신원동에 위치한 오디오 전문 박물관 오디움(audeum)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2만여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로 뒤덮인 외관. 숲을 모티프로 하여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그림자가 투영되여 대나무숲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025년 베르사유 건축상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중 하나로 선정됐다. 사진=정수진 제공

 

오디움은 KCC그룹 정몽진 회장이 출연한 사재에 창업주 고(故) 정상영 명예회장의 유산을 더해 세워진 공간.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리에 매료된 정몽진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오디오 컬렉션을 볼 수 있는데, 19세기 에디슨의 초기 축음기부터 20세기 웨스턴 일렉트릭 혼 스피커 등 약 150년에 걸친 오디오의 역사가 한데 모여 있다. 오디오 취미 유저의 끝도 ‘방 하나 혹은 집 한 채를 통째로 오디오를 위한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이 박물관은 그야말로 ‘덕력’이 임계점을 넘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3층 전시실에선 1950~60년대의 가정용 하이파이 스피커와 앰프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정수진 제공

 

컬렉션뿐 아니라 소리를 담은 공간 자체도 압도적이다. 2024년 6월 개관한 이곳은 전 세계 아름다운 건물을 선정하는 건축상 베르사유상에서 선정한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The World’s Most Beautiful Museums)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를, 일본을 대표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 하라 켄야가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멀리서 오디움의 외관을 보았을 때부터 압도적인데, 지상 5층과 지하 2층 규모의 건물의 외관을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알루미늄 파이프 2만여 개로 감싸 웅장함을 자아낸다. 내부 공간 또한 ‘인간의 내재된 감각들을 활용할 수 있을 때 더 좋은 전시관이 된다’는 하라 켄야의 개념이 오롯이 반영돼, 음향을 부드럽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선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과 독일 클랑필름의 스피커를 통해 음향 비교 체험이 가능하다. 사진=정수진 제공

 

엄청난 컬렉션과 공간에 깃든 거장들의 이름만 봐도 입장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무료라는 것도 반전. 단 가격은 진입장벽이 없지만 입장하기까지가 만만치 않다. 오디움은 100% 사전 예약제로, 공간 전체를 둘러보며 청음할 수 있는 전시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을 신청하거나 듣기에 집중한 리스닝 세션 ‘오디오 살롱’을 신청하면 방문할 수 있다. 처음 방문한다면 ‘정음: 소리의 여정’ 전시를 추천하는데, 이 프로그램이 주 3일, 하루 5차례 20명씩, 그러니까 하루 100명만 가능해 예약이 상당히 힘들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곳이란 후문이 뒤따를 정도.

 

19세기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 등이 전시된 2층 전시실. 높은 층고와 채광으로 사진 찍기에도 좋은 스폿이다. 사진=정수진 제공

 

그래도 의지가 있으면 뚫을 수 있다. 미리 관람 날짜와 시간대를 정한 뒤 예약 오픈 날짜와 시간을 알림 설정해 두고, 예약 시간이 되자마자 빛의 속도로 ‘광클’한 뒤, 동시접속자가 많아도 다시 누르지 않고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성공할 수 있다. 찰나의 주저함으로 매진되었어도 실망은 금물. 오디움은 노쇼를 할 경우 향후 예약에 제한이 있기에 사전 예약 취소가 많다. 관람 하루 전날 발생하는 취소표를 매의 눈으로 낚아채는 방법도 있다. 

 

전시는 전문 도슨트의 가이드에 따라 3층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약 110분간 진행된다. 이는 1960년대부터 19세기까지 오디오의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로, 시작인 3층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건 1950~60년대에 미국에서 꽃피운 가정용 하이파이 제품들과 1930~40년대 세계 영화 음향 시스템을 양분한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과 독일의 클랑필름의 라우드 스피커 등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웨스턴 일렉트릭과 클랑필름의 스피커로 같은 곡의 사운드를 비교 감상하는 시간이다. ‘막귀’여도 오디오에 따라 소리의 느낌과 질감이 사뭇 다르구나 생생하게 비교 체험 가능하다.

 

진귀한 스피커를 통해 듣는 김광석과 백지영과 비틀스의 음악은 얼마나 황홀한가. 관람객의 집중도가 최고도로 올라가는 때다. 사진=정수진 제공

 

이어 1920~30년대 오디오 컬렉션과 2차 세계대전 이후 대규모화된 미국 극장에 등장한 웨스턴 일렉트릭의 ‘혼’ 스피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도슨트의 설명과 전시 제품도 재미나지만, 오디오 덕후 아닌 일반인이라면 진귀한 시스템과 스피커로 드는 청음의 시간이 더 즐거울 것. 이날 전시에서도 토니 오말리의 ‘마이 웨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백지영의 ‘무시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 등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이 경험이 꽤나 귀중하다. 뭘 잘 몰라도 된다. 가만히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오소소 전율이 느껴지니까.

 

축음기 이전, 화려한 디자인과 기분 좋은 멜로디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던 뮤직박스들이 전시된 공간. 사진=정수진 제공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지하 라운지. 웨스턴 일렉트릭을 대표하는 음향 시스템 중 하나인 ‘미러포닉’이 자리한 곳으로, 하라 켄야가 패브릭 소재로 꽃 형태를 연출한 공간의 아름다움과 수만 여장의 진귀한 LP와 CD 컬렉션의 집요한 분위기가 어우러진다. 라운지 정면에 위치한 벨기에 오르간 제조업체 모르티에의 100년 넘은 클래식한 대형 오르간이 눈길을 끄는데, 아쉽게도 현재 수리를 기다리는 중이라 들을 순 없었다. 연말쯤 수리를 마치면 매주 토요일 첫 타임에서만 감상할 수 있다고. 대신 1936년산 초대형 미러포닉 M1 스피커를 통한 청음의 시간이 기다린다. 베르디의 오페라와 최근 영화가 개봉해 다시금 붐을 일으킨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을 들어보는 시간이라니! 둠칫둠칫 두둠칫,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소리의 흥을 소환할 때다.

 

전시는 지하 라운지에서 마무리된다. 초대형 미러포닉 M1 스피커를 통해 듣는 진귀한 청음의 시간. 사진=정수진 제공

 

무언가에 집요하게 빠져든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엔 분명 존재한다. 그 집요함을 흉내라도 낼 수 없는 우리 같은 범인은 그를 온전히 구경하는 재미만으로 충분하니, 오디움의 방문을 권한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단 1인 1매만 예약 가능하니 동행이 있다면 동시에 광클 경쟁을 하거나 취소표를 낚아채야 하며, 14세 미만 어린이는 입장할 수 없다.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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